|
야간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더 킹" 마지막 회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내가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지 아내는 묻지도 않은 보지 못한 시간동안의 줄거리를 열거한다. 이렇듯 아내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시간이 바보 상자라는 TV를 볼 때이다. "더 킹"은 오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났고 나는 노래를 듣겠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갖고 아내 곁을 벗어난다.
노트북을 켜고 이번에 구입한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중에서 먼저 읽어달라고 1이라 선명히 찍혀있는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꺼내들었다. 고 박완서님의 사진이 표지와 간지에서 나의 설레임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개정판 작가의 말을 읽어나가길 시작하였다.
전집의 첫 번째 책의 첫 번째 단편소설인 세모를 읽기 시작하면서 앞서 읽었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와는 너무도 다른 느낌이 들어 딴 사람이 쓴 것 같다는 망상에 빠지게 하였다. 도무지 주인공이 펼치는 생각에 공감이 들기는 커녕 재물에 노예가 된 자신을 돈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불쾌하기까지 하였다. 어찌보면 나의 머리와 철학이 아닌 현실에서의 나의 모습과 너무 비슷한 구성이 있어서 더 불쾌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주인공이 우연하게 강남에 이사를 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며 부자가 되었고 그 곳에 있는 부자들의 알량한 자존심을 이용하여 다시 더 부자가 되는 이야기가 나올 때 쯤에 책의 제목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나서 주인공이 허영에 빠지고 타락한 자만심을 부리는 치맛바람 속에서 자신이 있는 강남이 돈의 노예들이 사는 땅이고 자신도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가래침을 뱉으려고 하나 나오지 않아 답답해 한다는 구절은 이 글을 읽기 시작할 때의 나의 뻔뻔한 모습이 떠올라 화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이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지 경이스로울 따름이다. 그리고, 나의 입으로만 하는 이야기와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현실에서의 나의 행동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음에 다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2012. 5. 25 00:50
저자
박완서(1931년 10월 20일~2011년 1월22일)
저자의 다른 도서 후기
[박완서] 배반의 여름 - 저렇게 많이! , 어떤 야만
[박완서] 배반의 여름 - 여인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박완서]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1970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본문으로]
'개인 취미 > 나의 독서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나 반잔] 페르시아 : 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 (0) | 2012.07.01 |
---|---|
[박완서] 그 여자네 집 (0) | 2012.06.30 |
[시공사] 고갱 - 고귀한 야만인 (0) | 2012.06.25 |
[스테파노 마기] 그리스 : 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 (0) | 2012.06.20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0) | 2012.06.16 |
[위기철] 아홉살 인생 (0) | 2012.06.15 |
[원성] 풍경 (0) | 2012.06.13 |
[조셉 콘드레] 암흑의 핵심 (0) | 2012.06.10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0) | 2012.05.24 |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0) | 2012.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