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허균(1569년~1618년)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양천, 자는 단보, 호는 교산 혹은 학산, 성소, 성수, 백월거사
작품의 의의
1612년 작품으로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져 있음
*채수가 1511년경 지은 "설공찬전"의 국문본을 발견하여 최초의 한글 소설은 "설공찬전"입니다.*
주제
조선 시대의 문제점을 고찰하여 백성을 위하는 호민 정치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패한 관리들을 고발, 불평등한 사회를 고발
홍길동전
허균
조선국 세종 즉위 십오 년에 홍의문 밖에 한 재상이 있었다. 성은 홍씨요 이름은 아무개였다. 대대로 명문가족으로 어린 나이에 급제하여 물망이 조야에 으뜸인데다 충효까지 갖추어 그 이름을 온 나라에 떨쳤다. 일찍이 두 아들을 두었으니 맏아들 이름은 인형으로 본처 유씨가 낳은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길동으로 시비 춘섬이 낳은 소생이었다.
그에 앞서 공이 길동을 낳기 전에 꿈을 꾸었다. 갑자기 우레와 벽력이 진동하며 청룡이 물결을 헤치고 공을 향해 달려들어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다. 공은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여 생각하길 '내 이제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즉시 내당으로 들어가 부인 유씨의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고자 하니 부인은 정색하여 말했다.
"상공께서는 위신을 돌보지 않은 채 어리고 경박한 사람의 비루한 행위를 하고자 하시니 첩은 따르지 않겠습니다."
하며 말을 마치고는 손을 떨치고 나가 버렸다. 공은 몹시 무안하여 화를 참지 못하고 외당으로 나와 부인의 지혜롭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 때 마침 시비 춘섬이 차를 올리기에 그 고요한 분위기를 틈 타 춘섬을 이끌고 곁방에 들어가 바로 잠자리를 하였다. 그 무렵 춘섬의 나이는 열여덟이었는데, 한 번 몸을 허락한 후에는 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타인과 접촉할 마음도 먹지 않기에 기특하게 여겨 애첩으로 삼았다.
그 때부터 태기가 있더니 10달 만에 일개 옥동자를 낳았는데 생김새가 비범하여 실로 영웅호걸의 기상이었다. 공은 한편으로 기뻐하면서도 부인의 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길동이 점점 자라 여덟 살이 되자 총명이 보통 사람을 넘어 하나를 들으면 백을 알 정도였다. 그래서 공은 더욱 귀여워하면서도 근본이 천하여 길동이 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면 즉시 꾸짖어 그렇게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길동이 열 살이 넘도록 감히 부형을 부르지 못하고 종들로부터 천대받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원통히 여겨 마음 둘 바를 몰랐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맹을 본받지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병법이라도 익혀 대장인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동정서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내는 것이 대장부의 할 일이라.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 지경이라. 이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하고 말을 마치며 뜰에 내려와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공이 또한 달빛을 구경하다, 길동이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즉시 불러 물었다.
"너는 무슨 흥이 있어서 밤이 깊도록 잠을 자지 않느냐?"
길동이 공손히 대답했다.
"소인은 마침 달빛을 즐기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만물을 만들 때 오직 사람이 귀한 존재인 줄 아옵니다만 소인에게는 귀함이 없사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오리까?"
공은 그 말의 뜻을 알면서도 책망하듯 말하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길동이 절하고 말씀드리기를
"소인이 평생 서러워하는 바는, 소인이 대감 정기를 받아 남자로 태어났고 또 낳아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하고 형을 형이라 못 하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하고 눈물을 흘리며 적삼을 적셨다.
공이 듣고 나자 비록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 마음을 위로하면 마음이 방자해질까 염려하여 큰 소리로 꾸짖었다.
"재상 집안에 천한 종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너뿐이 아닌데 어찌 이다지 방자하냐? 이 다음 다시 이런 말을 하면 눈앞에서 용납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꾸짖으니 길동은 더 말을 못하고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공이 물러가라 하자 길동은 침소에 돌아와 슬퍼했다. 길동이 본래 재주와 기운이 뛰어나고 도량이 활달한지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루는 길동이 어미 침소에 가 울면서 아뢰었다.
"소자가 모친과 더불어 천생 연분이 중하여 이 세상에서 모자가 되었사오니 그 은혜가 지극하옵니다. 그러나 소자의 팔자가 기박하여 천한 몸이 되었으니 품은 한이 깊사옵니다. 장부가 세상에 살면서 남의 천대를 받음이 불가한지라, 소자는 자연 기운을 억제하지 못하여 모친 슬하를 떠나려 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모친께서는 소자를 염려하지 마시고 귀채를 보증하십시오."
그 어미가 듣고 나서 크게 놀라 말했다.
"재상가의 천생이 너 뿐이 아닌데 어찌 좁은 마음으로 어미 간장을 태우느냐?"
길동이 대답했다.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산은 천생이지만 십 팔 세에 그 어미와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전하였습니다. 소자도 그를 본받아 세상을 벗어나려 하오니 모친은 안심하고 후일을 기다리소서. 근간에 곡산댁의 형색을 보니 상공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우리 모자를 원수같이 알고 있습니다. 큰 화를 입을까 하오니 모친께서는 소자가 나감을 염려하지 마시고 몸 조십하십시오."
하니, 그 어머니 또한 슬퍼하더라.
원래 곡산댁은 곡산 지방의 기생으로 상공의 첩이 되었는데 이름은 초란이었다. 아주 교만하여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에게 거짓으로 고해 바치니 집안에 폐단이 무수하였다. 자신은 아들이 없는데 춘섬은 길동을 낳아 상공에게 항상 귀여움을 받자 속으로 앙심을 품고 있었다.
하루는 초란이 흉계를 꾸미고 무녀를 청하여 말하기를
"내가 편안하게 살려면 길동을 없앨 수 밖에. 만일 나의 소원을 들어주면 그 은혜를 후하게 갚으리라."
무녀는 이를 듣고 기뻐서 대답했다.
"지금 홍인문 밖에 제일 가는 관상녀가 있는데 사람의 상을 한 번 보면 전후 길흉을 맞힌답니다. 이 사람을 불러 소원을 자세하게 말하고 공께 추천하여 전후사를 본 듯이 고해 바치십시오. 그리하면 공이 속아 넘어가 화를 없애고자 할 것이니 그 때를 틈 타 이리이리하면 어찌 좋은 계책이 아니겠는지요?"
이에 초란이 크게 기뻐서 먼저 은돈 오십 냥을 주고 관상녀를 불러오도록 하자 무녀가 하직하고 갔다.
이튿날 공이 내실에 들어와 부인과 더불어 길동이 비범함을 이야기하면서 다만 신분이 천함을 한탄하고 있는데, 문득 여자가 들어와 마루 아래서 인사하기에 공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그내는 어떠한 여자인데 무슨 일로 왔소?"
그 여자가 말했다.
"소인은 관상보는 사람으로 우연히 상공댁에 이르렀습니다."
공이 이 말을 듣고 길동의 내력을 알고자 하여 즉시 길동을 불러 보이니 관상녀가 한참을 보다가 놀라 말하기를
"이 공자의 상을 보니 천고 영웅이요 일대 호걸이지만, 신분이 낮아 그것이 걱정이나 다른 염려는 없겠습니다."
하고는 말을 하고자 하다가 주저하기에 공과 부인이 이를 이상히 여겨 말했다.
"무슨 말인지 바른대로 이르라."
관상녀가 마지 못하는 체하며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했다.
"공자의 상을 보니 마음 속에 조화가 무궁하고 미간에 산천 정기가 영롱하오니 왕이 될 기상입니다. 장성하면 장차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오니 상공께서는 유념하십시오."
공이 다 듣고 놀란 나머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다가 마음을 진정하고 말하였다.
"사람의 팔자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니 너는 이 말을 절대 누설하지 말라."
공은 당부하고는 돈푼이나 주어 보내었다.
그 후로는 공이 길동을 산에 있는 정자에 머물게 하고 행동 하나하나를 엄격하게 살피었다. 길동은 이런 일을 당하자 설움이 더욱 북받쳤지만 어쩔 수가 없어 육도, 삼략과 같은 병법과 천문, 지리를 공부하였다. 공이 이 사실을 알고는 크게 근심하여 말했다.
"이 놈이 본래 재주가 있으니 만일 분수에 넘치는 마음을 품으면 관상녀의 말처럼 될 것이니 이를 장차 어찌할꼬?"
이 때 초란이 길동을 없애고자 천금을 주고 자객을 매수했는데 그 이름은 특재였다. 초란은 특재에게 전후 내막을 자세히 일러 주고는 공에게 가서 아뢰었다.
"며칠 전 관상녀가 아는 일이 귀신 같으니 길동의 앞일을 어떻게 처리하려 하십니까? 저도 놀랍고 두려우니 일찍 길동을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 듯 하옵니다."
공은 이 말을 듣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너는 번거롭게 굴지 말라."
하고 물리치기는 했으나 마음이 자연 산란하여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해 병이 나고 말았다. 부인과 좌랑 인형이 크게 근심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초란이 곁에 있다가 아뢰었다.
"상공의 병환이 위중하심은 길동을 둔 때문입니다. 저의 천한 소견으로는 길동을 죽여 없애면 상공의 병환도 쾌차하실 뿐 아니라 가문도 보존할 것이온데 어찌 이를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부인이 이르기를
"아무리 그렇다 한들 천륜이 지중한데 차마 어찌 이를 행하겠소?"
고 하자, 초란이 말했다.
"돋자오니 특재라는 자객이 있는데 사람 죽이기를 주머니 속의 물건 꺼내듯 한답니다. 그에게 거금을 주고 밤에 들어가 해치게 하면 상공이 알아도 어쩔 수 없을 것이오니 부인은 거듭 생각하십시오."
부인과 좌랑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는 차마 못할 바이데 첫째는 나라를 위함이요, 둘째는 상공을 위함이며, 셋째는 홍씨 가문을 보존하기 위함이니 너의 뜻대로 행하도록 하라."
그러자 초란이 크게 기뻐하면서 다시 특재를 불러 자세히 일러 주고 오늘 밤에 급히 행하라 하니 특재가 응낙하고 밤 들기를 기다렸다.
한편, 길동은 그 원통한 일을 생각하니 잠시를 머물지 못할 바이지만 상공의 엄령이 지중하므로 어쩔 수 없이 밤이면 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날 밤 촛불을 밝혀 놓고 "주역"을 골똘히 읽고 읽는데 까마귀가 세 번 울고 갔다. 길동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혼잣말로
"저 짐승은 본래 밤을 꺼리거늘, 지금 울고 가니 심히 불길하도다."
하면서 잠시 "주역"의 팔괘로 점을 쳐 보고는 크게 놀라 책상을 밀치고 둔갑법을 시행한 후 바깥 동정을 살피었다. 사경쯤 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천천히 방문으로 들어오는지라. 길동이 급히 몸을 감추고 주문을 외니 홀연 한 줄기 거센 바람이 일어나며 집은 온 데 간 데 없고 첩첩산중에 풍경이 펼쳐졌다. 크게 놀란 특재는 길동의 조화가 무궁한 줄 알고 비수를 감추며 피하고자 했으나 갑자기 길이 끊기면서 충암절벽이 가로막아 진퇴유곡이라. 사방으로 방황하다 피리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어떤 소년이 나귀를 타고 오며 피리 불기를 그치고 꾸짖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 하는가? 무고한 사람을 해치면 어찌 천벌이 없으리오."
하고 주문을 외니 홀연히 한 뭉치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고 모래와 자갈이 날리었다. 특재가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길동이었다. 재주가 대단하다 여기면서도 '어찌 나를 대적하리오.' 하고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너는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 마라. 초란이 무녀와 관상녀로 하여금 상공과 의논하고서 너를 죽이려 함이니 어찌 나를 원망하랴?"
칼을 들고 달려드는 특재를 보자 길동은 분함을 참지 못해 요술로 특재의 칼을 빼앗아 들고 호통쳤다.
"네가 재물을 탐내 사람 죽임을 좋아하니 너 같이 무도한 놈은 죽여 후환을 없애리라."
하고 칼을 드니 특재의 머리가 방 가운데 떨어졌다. 길동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그날 밤에 바로 관상녀를 잡아 와 특재가 죽어있는 방에 들이쳐 박고 꾸짖었다.
"네가 나와 무슨 원수졌다고 초란과 함께 나를 죽이려 하였느냐?"
하고 칼로 치니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이 때 길동이 두 사람을 죽이고 하늘을 살펴보니 은하수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달빛은 희미하여 마음은 더욱 울적해졌다. 분한 기운을 참지 못하고 초란마저 죽이고자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심을 깨닫고 칼을 던졌다. 차라리 다른 곳으로 망명하여 살길을 꾀할 것을 생각하였다. 바로 상공 침소에 가 하직 인사를 올리고자 하는데 그 때 공도 창 밖의 인기척을 듣고서 창문을 열고 살폈다. 공은 길동임을 알고는 불러 말했다.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않고 이렇게 방황하느냐?"
길동은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소인이 일찍 부모님께서 낳아 길러 주신 은혜를 만분의 일이나마 갚을까 하였더니, 집안에 좋지 못한 사람이 있어 상공께 모함하여 소인을 죽이고자 하오매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으니 상공을 모실 길이 없기에 오늘 하직을 고하옵니다."
하기에 공이 크게 놀라 물었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서 어린 아이가 집을 버리고 떠나려 한단 말이냐?"
길동이 대답했다.
"날이 밝으면 자연히 아시게 되려니와 소인의 신세는 뜬 구름과 같사옵니다. 상공의 버린 자식이 어찌 갈 곳이 있겠습니까?"
길동이 두 줄기의 눈물을 참지 못해 말을 이루지 못하자 공은 그 모습을 보고 측은히 여겨 타일렀다.
"내가 너의 품은 한을 짐작하겠으니 오늘부터는 아버지라 부르고 형이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노라."
길동은 두 번 절하고 아뢰었다.
"소자의 한 가닥 지극한 한을 풀어 주시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아버지께서는 만수무강하십시오."
이렇고 말하고 하직하니 공이 붙잡지 못하고 다만 무사하기만을 당부하였다. 길동이 또 어머니 침소에 가서 고하였다.
"소자는 지금 슬하를 떠나려 하오나 다시 모실 날이 있을 것이니 모친은 그 사이 귀한 몸을 보증하십시오."
하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춘섬이 이 말을 듣고 무슨 까닭이 있음을 짐작하나 하직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통곡하며 말했다.
"네 어디로 가려 하느냐? 한 집에 있어도 거처하는 곳이 멀어 늘 보고 싶었는데, 이제 너를 정처없이 보내고 어찌 잊겠느냐? 부디 속히 돌아와 만나기를 바란다."
길동이 절하고 문을 나와 멀리 바라보니 첩첩산중에 구름만 자욱한데 정처없이 길을 가니 어찌 가련치 않으랴.
한편 초란은 특재의 소식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정을 알아보니 길동은 간 데가 없고 특재와 관상녀의 시신만 방 안에 있더라고 했다. 이에 혼비백산하여 급히 부인에게 고하니 부인은 크게 놀라 좌랑을 불러 이 일을 상공에게 고하였다. 이 소식에 접한 상공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길동이 밤에 와 슬피 하직하기에 괴이히 여겼더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이에 좌랑이 감히 숨기지 못하여 초란이 그 동안에 한 일을 아뢰었더니 공은 더욱 분노하여 초란을 내쫒고 그들의 시체를 없앤 후 노복을 불러 이런 말을 내지 말라 당부하였다.
그 무렵, 길동은 부모와 이별하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한 곳에 이르니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인가를 찾아 점점 들어가니 큰 바위 밑에 돌문이 닫혀 있었다. 가만히 그 문을 엵고 들어가니 드넓은 평원에 수백 호의 인가가 즐비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잔치를 즐기니 도적의 소굴이었다. 한 사람이 길동을 보고 비범함을 반겨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곳을 찾아 왔소? 이곳에는 영웅이 모여 있으나 아직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였으니 그대가 만일 용력이 있어 참여하고자 할진대 저 돌을 들어 보아라."
길동이 이 말을 듣고 다행히 여겨 재배하며 말했다.
"나는 경성 홍판서의 서자 길동인데 집에서 천대받기가 싫어서 정처없이 떠돌다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소. 마침 모든 호걸들이 동료되기를 바라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또한 장부가 어찌 저만한 돌 들기를 근심하오리까?"
하고 그 돌을 들어 수십 보를 걷다가 던지니 그 돌 무게는 천 근이니 되었다. 여러 도적들이 일시에 칭찬하여 말하길,
"과연 장사로다. 우리 수천 명 중에 이 돌을 드는 자가 없더니 오늘 하늘이 도와 장군을 내려 주신 것이로다."
하고 길동을 윗 자라에 앉힌 뒤 차례로 술을 권하며 예산 의례대로 흰말을 잡아 맹세하면서 언약을 굳게 맺었다. 이에 모든 사람이 일시에 승낙하고 온 종일 즐기며 놀았다. 그 후 길동은 여러 사람과 더불어 무예를 연습해 수개월 안에 군법을 엄히 세웠다.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제의를 했다.
"우리가 벌써부터 합천 해인사를 쳐서 그 재물을 빼앗고자 하오나 지략이 부족하여 일을 처리하지 못했는데 이제 장군님 의향은 어쩌신지요?"
길동은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장차 출동할 터이니 그대들은 내 지휘대로 하라."
하고는 푸른 도포에 검은 요대를 두르고 나귀 등에 올랐다. 부하 몇 명도 데리고 나가며 말하였다.
"내가 그 절에 가서 동정을 살펴보고 오리라."
고 하며 가는 뒷모습이 완연한 재상가 자제였다. 그 절에 들어가 주지에게 먼저 말했다.
"나는 경성 홍판서댁 자제라. 이 절에 공부를 하려고 왔는데 내일 백미 이십 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깨끗이 장만하면 너희들도 함께 먹으리라."
하고는 절 안을 두루 살펴보며 뒷날을 기약하고 동구를 나오니 모든 중들이 기뻐하였다.
길동이 돌아와 백미 수십 석을 보내고 부하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내가 아무 날 그 절에 가 이리이리 할 것이니 그대들은 뒤를 따라와 이리이리 하라."
그 날이 다가와 부하 수십 명을 데리고 해인사에 이르니 모든 중이 맞이해 들어갔다. 길동이 노승을 불러 말하였다.
"내가 보낸 쌀로 음식이 부족하지 않던가?"
하니 노승이 말하길,
"어찌 부족하겠습니까? 너무 황감하옵니다."
길동이 맨 윗 자리에 앉아 모든 중을 일제히 청해 각기 상을 받게 하고는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니 모든 중이 황감해 하였다. 길동이 상을 받고 먹다가 모래를 슬그머니 입에 넣고 깨무니 소리가 크게 났다. 중들이 듣고 놀라 사과를 했지만 길동은 일부러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너희들이 음식을 어찌 이다지 깨끗하지 않게 했느냐? 이는 필시 나를 능멸하는 짓이다."
하고 부하들을 시켜 모든 중을 한 줄에 결박하여 앉히니 모두가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윽고 큰 도적 수백 명이 일시에 달려들어 모든 재물을 제 것 가져가듯 하니 중들이 보고 다만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름이었다. 이 때 외출했던 불목한이 마침 그 때 돌아오다가 이 일을 보고 관가에 알리니 합천 원이 관군을 뽑아 그 도적을 잡으라 하였다. 수백 장교가 도적을 쫒아가는데, 문득 보니 송낙을 쓰고 장삼을 입은 중이 산에 올라가 외쳤다.
"도적이 저 북쪽의 작은 길로 가니 빨리 가 잡으시오."
관군들은 그 절 중이 가리키는 줄 알고 풍우같이 북쪽의 좁은 길로 찾아갔다가 잡지도 못하고 날이 저문 후에 돌아갔다. 길동은 부하들을 남쪽의 큰 길로 보내고 홀로 중의 차림으로 관군을 속여 무사히 소굴로 돌아오니 모든 부하들이 벌써 재물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일시에 나와 사례하기에 길동은 웃으며 말하였다.
"장부가 이만한 재주 없대서야 어찌 모든 사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겠소."
그 후 길동은 스스로 호를 활빈당이라고 하면서 조선 팔도로 다니며 각 읍 수령이 불의로 모은 재물이 있으면 탈취하고 혹시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있으면 구제하되 백성은 침범하지 않고 나라에 속한 재물은 추호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부하들은 그 의도를 알고 감복하였다.
"이제 함경 감사가 탐관오리로 백성을 착취해 견딜 수 없게 되었는지라. 우리가 그대로 둘 수 없으니 나의 지휘대로 하라."
하고는 아무 날 밤으로 기약을 정하고 남문 밖에 불을 질렀다. 감사가 크게 놀라 불을 끄라 하니 관리며 백성들이 한꺼번에 달려나와 불을 끄었다. 길동의 부대 수백 명이 일시에 성중에 달려들어 창고를 열고 곡식과 무기를 수탈하여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중이 물 끓듯이 요란해졌다. 감사가 뜻밖의 변을 당하여 어쩔 줄을 모르더라. 날이 밝은 후 살펴보고서야 창고의 무기와 곡식이 없어졌음을 알고 도적 잡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홀연 북문에 방이 붙기를 '아무 날 돈과 곡식을 도적한 자는 활빈당 당수 홍길동이라.' 하였기에 감사가 군사를 징발하여 그 도적을 잡으려 하였다.
한편, 길동이 여러 부하와 함게 곡식을 많이 훔쳤으나 행여 길에서 잡힐까 염려하여 둔갑법과 축지법을 써서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샐 무렵이었다.
하루는 길동이 여러 부하를 모으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합천 해인사에 가 재물을 탈취하고 또 함경 감영에 가 돈과 곡식을 도적하여 소문이 파다하려니와 내 성명을 써서 감영에 붙였으니 오래지 않아 잡히기 쉬울 것이라. 그러나 그대들은 나의 재주를 보라."
하고 즉시 초인 일곱을 만들어 주문을 외며 혼백을 붙였다. 일곱 길동이 한꺼번에 팔을 뽐내며 크게 소리치고 한 곳에 모여 조화를 무궁하게 부리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알 수가 없더라. 팔도에 하나씩 흩어지되 각각 사람 수백 명씩 거느리고 다니니 그 중에서도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덟 길동이 팔도에 다니며 바람과 비를 내리는 술법을 부려 각읍 창고에 있던 곡식을 하룻밤 사이에 종적없이 가져가며 지방에서 서울로 올려 보내는 봉물을 의심없이 탈취하니 팔도의 각 읍이 소란하여 사람들이 밤에는 잠을 설치고 낮에는 행인이 없었다. 이 때문에 팔도가 요란해지자 감사가 공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난데없는 홍길동이라는 대적이 신통한 술법을 부려 각 읍의 재물을 탈취하고 선물로 보내는 물건들이 올라가지 못하게 폐단이 심하니, 그 도적을 잡지 않으면 장차 어느 지경에 이를지 알지 못할 정도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좌우 두 포도청에 명하여 잡게 하옵소서."
임금이 보고 크게 놀라 포도대장을 부르니 계속 팔도에서 공문이 올라왔다. 연이어 떼어 보니 도적의 이름을 다 홍길동이라 하였고 돈과 곡식 잃은 날짜를 보니 한 날 한 시라. 임금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도적의 용맹과 술법은 옛날 중국의 도적 치우라도 당하지 못하리로다. 아무리 신출귀몰한 놈인들 한 몸이 팔도에 있어서 한 날 한 시에 도덕질을 하리오? 이는 보통 도덕이 아니어서 잡기 어렵겠으니 좌포장과 우포장이 군사를 내어서 잡도록 하라."
하니 이 때 우포장 이흡이 아뢰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그 도적을 잡아 오겠사오니 전하께서는 근심하시지 마십시오. 이제 좌우포장이 어찌 한거번에 출전하겠습니까?"
임금이 옳다고 여겨 급히 출발하기를 재촉하니 이홉이 하직한 후 수많은 관졸을 거느리고 출발하면서 각각 흩어져 아무 날 문경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이홉은 몇몇 포졸을 데리고 변복한 채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날이 저물어 주점을 찾아 쉬고 있는데 문득 어떤 소년이 나귀를 타고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포장이 답례하니 그 소년은 한숨 쉬며 말했다.
"온 천하가 임금의 땅 아님이 없고 모든 땅의 백성이 임금의 신하 아님이 없으니 소생이 비록 시골에 있으나 나라를 위해 근심스럽습니다.
포장이 일부러 놀라는 체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년이 말했다.
"이제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팔도로 다니며 소란을 피워 인심이 동요하는데 이 놈을 잡아 없애지 못하니 어찌 분하고 한탄스럽다 않겠습니까?"
포장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그대가 기골이 장대하고 말씀이 충직하니 나와 함게 그 도적을 잡는 것이 어떻겠소?"
소년이 말했다.
"내가 벌써 잡고자 하면서도 용력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어찌 다행이 아니겠소? 그러나 그대의 재주를 알 수 없으니 그윽한 곳에 가서 시험해 봅시다."
하고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높은 바위 위에 올라앉으면서 말했다.
"그대는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나를 차 내리치라."
하고 벼랑 끝에 나가 앉았다. 포장이 생각하되 '제 아무리 용력이 있다한 들 한 번 차면 어찌 떨어지지 않겠는가?' 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두 발로 매우 차니 그 소년이 갑자기 돌아앉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 장사로다. 내가 여러 사람을 시험해 보았지만 나를 흔들리게 한 자가 없었는데 그대에게 차이어 오장이 울린 듯하도다. 그대가 나를 따라오면 길동을 잡으리라."
하고 첩첩산중으로 들어가기에 포장이 생각하되 '나도 힘을 자랑할 만한데 오늘 저 소년의 힘을 보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곳까지 왔으니 설마 저 소년 혼자서 길동 잡기를 바라겠는가?' 하고 따라갔다. 그 소년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말하였다.
"이곳이 길동의 소굴인데 내가 먼저 들어가 살펴볼 것이니 그대는 여기서 기다리라."
포도 대장은 속으로 의심은 하였으나 빨리 잡아 오라고 당부하고는 앉아 있었다. 이윽고 홀연히 산골짜기로 수십 명의 군졸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포도 대장이 크게 놀라 피하고자 하는데 점점 가까이 와 포도 대장을 결박하여 꾸짖었다.
"네가 포도 대장 이흡인가? 우리들이 지부왕의 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하고 쇠사슬로 목을 옭아 풍우같이 몰아가니 포도 대장이 혼이 빠져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 곳에 이르러 소리를 지르며 끓어 앉히기에 포장이 정신을 가다듬어 쳐다보니 궁궐이 광대한데 무수한 장사들이 주위에 벌여서 있고 궁전 위를 보니 한 임금이 앉아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하찮은 놈이 어찌 홍장군을 잡으려 하는가? 너를 잡아 지옥에 가두리라."
포도 대장이 겨우 정신을 차려 고하였다.
"소인은 인간 세상의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죄도 없이 잡혀왔으니 살려 보내주기를 바라나이다."
하고 몸시 애결하니 궁전 위에서 웃으며 꾸짖었다.
"이 사람아, 나를 자세히 보라. 나는 곧 활빈당 우두머리 홍길동이다. 그대가 나를 잡으려 하기에 그 용력과 뜻을 알고자 어제 내가 푸른 도포 입은 소년처럼 변장하여 그대를 인도해 이곳에 와 나의 위엄을 보이고자 하였노라."
말을 마치자 부하들을 시켜 묶은 것을 풀었다. 마루에 앉히고 술을 내어 권하면서 다시 말했다.
"그대는 부질없이 다니지 말고 빨리 돌아가되 나를 보았다 하면 반드시 벌과 책망이 있을 것이니 부디 그런 말은 내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술을 권하면서 부하들에게 내어 보내라 하였다.
포도 대장이 생각하되 '내가 꿈인가 생시인가? 여기에는 어찌하여 왔을꼬?' 하며 길동의 신기한 조화에 놀라 일어나 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홀연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이상히 여겨 정신을 진정하여 살펴보니 자신이 가죽 부대 속에 들어 있었다. 간신히 나와 보니 부대 셋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차례로 끌러 내어 보니 처음 떠날 때 데리고 왔던 하인이라. 서로 이르기를
"이게 어찌된 일인고? 우리가 떠날 때 문경으로 모이자 하였더니 어찌 이곳에으로 왔을꼬?"
하고 두루 살펴보니 다른 곳도 아니고 장안성 북악이라. 네 사람이 어이없이 성 안을 굽어보며 하인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여기 왔느냐?"
세 사람이 아뢰었다.
"소인들은 주점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과 구름에 싸여 이리 왔사오니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합니다."
포도 대장이 말하였다.
"이 일이 너무나 허무맹랑하니 남에게 전하지 말라. 그러나 길동의 재주는 헤아릴 수 없으니 어찌 사람의 힘으로 잡으리요. 우리가 이제 그저 돌아가면 반드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니 몇 달을 기다렸다 가자."
하고 나왔다.
이 때 임금이 팔도에 공문을 내려 길동을 잡도록 하였지만 길동의 조화가 무궁하였다. 장안 큰 길에 혹은 수레를 타고 왕래하고 혹은 각 읍에 도착 날짜를 미리 공문으로 알려 놓고는 가마를 타고 왕래하며, 혹은 어사의 모습으로 탐관오리의 목을 자르고 임금에게 보고하되 가짜 어사 홍길동의 장계문이라 했다. 이에 임금은 더욱 진노하여
"이 놈이 각 도에 다니며 이런 난리를 치는데도 아무도 잡지 못하니 장차 이를 어찌할꼬?"
하면서 삼정승과 육판서를 모아 의논을 하였다. 그 때 연이어 공문이 올라왔는데 전부 홍길동에 관한 공문이었다. 임금이 차례대로 보시고 크게 근심하여 좌우 사람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이 놈이 아마 사람은 아니고 귀신이 폐단을 만드는 것이니 조신 중에는 누가 그 근본을 짐작할 수 있겠소?"
한 사람이 나와서 아뢰었다.
"홍길동은 전임 이조판서 홍아무개의 서자요, 병조좌랑 홍인형의 서제이오니 이제 그 부자를 잡아들여 친히 문초하시면 자연히 아실까 하옵니다."
임금이 더욱 화를 내어
"이런 말을 어찌 이제 하는가?"
하고는 즉시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다. 홍아무개는 의금부에 가두고 먼저 인형을 잡아들여 임금이 친히 심문하였다. 임금이 진노하여 책상을 치며 꾸짖었다.
"길동이라는 도적이 너의 서제라하니 어찌 조치하지 않고 그냥 두어 국가의 큰 환란이 되게 하느냐? 네가 만일 잡아들이지 않으면 너희 부자의 충효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빨리 잡아들여 조선의 큰 변란을 없게 하라."
인형이 황공하여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신의 천한 아우가 있어 일찍 사람을 죽이고 망명 도주한 지 몇 년이나 지났으나 그 생사를 알지 못하여 신의 늙은 아비는 그 일로 신병이 위중한 나머지 언제 돌아가실지 모릅니다. 길동이 착하지 못하여 전하께 근심을 끼쳤으니 신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꼐서는 자비를 내려 신의 아비 죄를 사하여 집에 돌아가 조리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시면 신이 죽음으로써 약속하고 길동을 잡아 저희 부자의 죄를 씻을까 하옵니다."
임금이 다 듣고 나자 감동하여 즉시 홍아무개를 사면하고 인형에게 경상 감사를 제수하면서 말했다.
"경이 만일 길동을 잡지 못하면 감사로서의 능력이 없다고 볼 것이니라. 일년 기한을 주니 어서 잡아 들이라."
인형이 수없이 절하며 은혜를 감사하고 임금께 하직하였다. 바로 그 날 출발하여 감영에 도착하여 감사로 부임하고는 각 읍에 공고문을 붙였다. 그 내용은 길동을 달래는 것이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사람이 세상에 남에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음으로써 인의예지가 분명하거늘 이를 알지 못하고 임금과 아버지의 명을 거역해 불충 불효하면 어찌 세상에 용납하리요. 우리 아우 길동은 이런 일을 알 것이니 스스로 형을 찾아와 사로잡히라. 아버지께서 너로 말미암아 병이 들어 앓아 누으시고 전하께서 크게 근심하시니 너의 죄악은 가득 차서 넘치는지라. 이 때문에 나를 특별히 감사로 임명하여 너를 잡아 들이라 하신다.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씨 집안의 여러 대에 걸친 깨끗한 덕이 하루 아침에 멸하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바라건데 아우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일찍 자수하면 너의 죄도 덜어질 것이요, 우리 가문도 보존할 것이니 어찌 하겠느냐? 너는 만 번 생각하여 자수하라."
감사가 이 공문을 각 읍에 붙인 뒤 공무를 전폐한 채 길동이 자수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나귀를 탄 소년 하나가 하인 수십 명을 거느리고 병영 밖에 와 뵙기를 청한다 하여 감사가 들어오라 하니, 그 소년이 대청 위에 올라 공손히 인사했다. 감사가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길동인지라 기쁘고 놀라워 좌우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손을 잡고 흐느껴 울면서 말했다.
"길동아, 네가 한 번 집을 떠난 뒤 생사를 알지 못하여 아버지께서는 몸 속 깊이 병을 얻으셨다. 너는 갈수록 불효를 끼칠 뿐 아니라 나라에 큰 근심이 되게 하니, 무슨 마음으로 불충 불효를 행하며 또한 도적이 되어 세상에 피하지 못할 죄를 짖느냐? 이 때문에 전하께서 진노하여 나로 하여금 너를 잡아들이도록 하셨다. 이는 피치 못할 죄이니 너는 일찍 서울로 올라가 천명에 순종해라."
하고 말을 마치며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길동은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부형을 위태로움으로부터 구하고자 함이니 어찌 다른 까닭이 있으리오. 대감께서 당초에 천한 길동을 위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게 하셨더라면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이미 지나간 일은 말해 봐야 쓸 데 없거니와 이제 나를 결박하여 경사로 올려 보내소서."
하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감사는 이 말을 듣고 한 편 슬퍼하면서도 한 편 공문을 쓰고는 길동의 목에 칼을 채우고 발에 착고를 채워 죄인 호송용 수레에 태웠다. 건장한 장교 십여 명을 뽑아 죄인을 데리고 가게 하되 주야로 갑절의 길을 가도록 시켜 올려 보냈다. 각 읍 백성들은 길동의 재주를 들었는지라 잡아 온다는 소문을 듣고 길이 메어지게 구경하더라.
이 때, 팔도에서 다 길동을 잡아 올리니 조정과 서울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도 몰랐다. 임금이 놀라서 온 조정 대신들을 모아 몸소 죄인을 다스리는데 여덟 명의 길동을 잡아 올리니 그들이 서로 다투면서 말하기를
"네가 진짜 길동이지 나는 아니다."
하며 서로 싸우니 어느 것이 진짜 길동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임금이 괴이히 여겨 즉시 홍아무개를 불러 말했다.
"자식을 알아보는 데는 아비만한 자가 없다 했으니 저 여덟 중 경의 아들을 찾아내라."
홍공이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면서 아뢰었다.
"신의 천한 자식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점이 있사오니, 이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덟 길동을 꾸짖기를
"지척에 임금님이 계시고 아래로 아비가 있는데 네가 이렇듯 천하에 없는 죄를 지었으니 죽기를 아끼지 말라."
하고 피를 토하면서 엎어져 기절하였다. 임금이 크게 놀라 궐내의 약을 처방하는 사람에게ㅔ 구하라 하시되 효험이 없었다. 여덟 길동이 이를 보고 일시에 눈물을 흘리면서 주머니에서 환약 한 개씩을 내어 입에 드리우니 홍공이 반나절 후 정신을 차렸다.
여러 길동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신의 아비가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업사온데 신이 어찌 감히 나쁜 짓을 하오리까? 신은 본디 천비 소생이라. 그 아비를 아비라 못하옵고 그 형을 형이라 못하여 평생 한이 맺혔기에 집을 버리고 도적의 무리에 참여하였사옵니다. 그러나 백성은 추호도 범하지 않고 각 읍 수령이 억지로 백성들에게서 착취한 재물만 빼앗았을 뿐입니다. 이제 십년이 지나면 조선을 떠나 갈 곳이 있사오니 엎드려 빌건데 전하께서는 근심하지 마시고 신을 잡으라는 문과 방을 거두어 주옵소서."
하고 말을 마치며 여덟 명이 한꺼번에 넘어지므로 자세히 보니 모두 초인이더라. 임금이 더욱 놀라며 진짜 길동을 잡으라는 공문을 다시 팔도에 내렸다.
길동이 허수아비를 없애고 두루 다니다가 사대문에 글을 써 붙였는데 그 글에다
"소신 길동은 아무리 하여도 잡지 못할 것이오니 병조판서 벼슬을 내리시면 잡히겠습니다."
고 하였다. 임금이 이 글을 보고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니 모든 신하들이 말했다.
"이제 그 도적을 잡으려 하다가 잡지 못하고 도리어 병조판서를 제수하심은 너무나 수치스러워 이웃 나라에 그 일을 말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옳게 여기고 다만 경상 감사에게 길동 잡기를 재촉하니 경상 감사가 왕명을 받고는 황공하고 죄송하여 어쩔 줄 모르더라.
하루는 길동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절하고 말했다.
"소제 지금은 진짜 길동이오니 형님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저를 결박하여 경사로 보내십시오."
감사가 이 말을 듣고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 철없는 아이야. 너도 나와 동기인데 부형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온 나라를 소란케 하니 어찌 애닮지 않으리오. 네가 이제 진짜 몸이 와서 나를 보고 잡혀 가기를 자원하니 도리어 기특한 아이로다."
하고 급히 길동의 왼쪽 다리를 보니 과연 혈점이 있었다. 즉시 사지를 결박하여 죄인 호송용 수레에 태운 뒤 건장한 장교 수십 명을 뽑아 철통같이 싸고 풍우같이 몰아가도 길동의 안색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여러 날만에 서울에 다다랐으나 대결 문에 이르러 길동이 한 번 몸을 움직이자 쇠사슬이 끊어지고 수레가 깨어져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공중으로 올라가며 훌쩍 운무에 묻혀 가 버렸다. 장교와 모든 군사가 어이없어 다만 궁중만 바라보며 넋을 잃을 따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사실을 보고하니 임금이 듣고 말하였다.
"천고에 이런 일이 어디 있으랴?"
이에 여러 신하 중 한 사람이 아뢰기를
"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서를 한 번 지내면 조선을 떠나겠다고 하오니 한 번 소원을 풀면 스스로 은혜에 감사할 것이니 이 때 틈을 타 잡는 것이 좋을까 하옵니다."
임금이 옳다 여겨 즉시 길동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하고 사방에 방을 써 붙였다.
이 때 길동이 이 말을 듣고 즉시 고관의 복장인 사모관대에 서대를 두르고 덩그런 수레에 한가롭게 높이 타고 큰 길로 버젓이 들어오면서 말하기를
"이제 홍판서 사은하러 온다."
병조의 하급 관리들이 맞이해 궐내에 들어간 뒤 여러 관원들이 의논하기를
"길동이 오늘 임금의 은혜에 사례하고 나올 것이니 도끼와 칼을 쓰는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나오거든 한꺼번에 쳐 죽이라."
하고 약속을 하였다. 길동이 궐내에 들어가 엄숙히 절하고 아뢰기를
"소신이 죄악이 지중하온데 도리어 천은을 입사와 평생의 한을 풀고 돌아가옵고 전하와 영원히 이별하오니 부디 만수 무강하소서."
하고 말을 마치며 몸을 공중에 솟구쳐 구름에 싸여 가니 그 가는 바를 알 수가 없더라. 임금이 보고 탄식하여 말하길,
"길동의 신기한 재주는 고금에 희한하도다. 제 지금 조선을 떠나노라 하였으니 다시는 폐 끼칠 일이 없을 것이오. 비록 수상하기는 하나 일단 대장부다운 활달한 마음을 가졌으니 족히 염려 없을 것이로다."
하고 팔도에 사면의 글을 내려 길동 잡는 일을 거두었다.
한편, 길동이 제 곳에 돌아와 부하들에게 명령하길
"내가 다녀 올 곳이 있으니 너희들은 아무데도 출입하지 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즉시 몸을 솟구쳐 올라 남경으로 향하여 가다 한 곳에 다다르니 그 곳은 율도국이었다. 사면을 살펴보니 산천이 수려하고 인물이 번성하여 가히 몸을 편안히 쉴 곳이었다. 남경에 들어가 구경한 뒤 또 저도라 하는 섬에 들어가 두루 다니면서 산천을 구경하고 인심도 살피다가 오봉산에 이르러서는 천하 제일 강산이라. 둘레가 칠백 리요, 기름진 논이 가득하여 살기에 정말 합당한지라. 마음 속으로 헤아리되 '내 이미 조선을 하직하였으니 이 곳에 와 은거하였다가 큰 일을 도모하리라.' 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모든 부하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아무 날 양천 강변에 가서 배를 많이 만들어 몇 월 며칠 경성 한강에 대령하라. 내 임금께 청해 벼 일천 석을 구해올 것이니 기약을 어기지 말라."
한편, 홍공은 길동의 장난이 없으므로 신병이 쾌차하고 임금 또한 근심없이 지내게 되었다. 당시는 추구월 망간이였는데 임금이 달빛을 받으며 후원을 배회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줄기의 맑은 바람이 일어나며 공중에서 피리 소리가 맑게 울려오는 가운데, 한 소년이 내려와 임금 앞에 엎드렸다. 임금은 놀라서 물었다.
"선동이 어찌 인간 땅에 내려와 무엇을 하려 하느뇨?"
소년은 땅에 엎드려 아뢰기를
"신은 전임 병조판서 홍길동이옵니다."
임금이 놀라 물었다.
"네가 어찌 깊은 밤중에 왔느냐?"
길동이 대답하길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실까 했으나, 천비 소생이라 문으로는 홍문관에서 막혀있고 무로는 선전관에 막혀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사방을 멋대로 떠돌아다니면서 관청에 폐를 끼치고 조정에 죄를 지음은 전하로 하여금 아시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만수무강하소서."
하고 공중으로 올라가 나는 듯이 가니 임금이 그 재주를 못내 칭찬하였다. 그 후로는 길동의 폐단이 없으니 사방이 태평하였다.
길동이 조선을 하직하고 남경 땅 저도라는 섬으로 들어가 수천 호의 집을 지은 뒤 농업에 힘쓰고 무기 창고를 지으며 군법을 연습하니 병사는 잘 훈련하고 양식은 풍족하였다.
하루는 길동이 화살 촉에 바를 약을 구하러 망당산으로 가다가 낙천 땅에 이르렀다. 그 곳에는 부자 백룡이라는 사람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재질이 비상하여 애중하게 여기는 터였으나, 어느 날 광풍이 크게 불면서 그 딸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자 백룡 부부는 슬퍼하면서 많은 돈을 들여 사방으로 찾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부부는 슬픔에 젖어 '누구라도 내 딸을 찾아주면 재산의 반을 주고 사위를 삼으리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길동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측은하였으나 하릴없이 망당산에 가서 약초를 캐며 들어가다 날이 저물어 주저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나며 등불이 밝게 비쳤다. 그 곳을 찾아가니 사람이 아닌 미물이 앉아 지껄이고 있었다. 원래 이 짐승은 울동이라는 짐승이니 여러 해를 묵어 변화가 무궁하였다. 길동이 몸을 감초고 활로 쏘니 그 중 괴수가 맞았다. 그러자 모두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가에 길동은 나무에 의지하여 밤을 지내고 두루 돌아다니면서 약을 캐더니 갑자기 괴물들이 길동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일로 이 깊은 곳에 이르렀소?"
길동이 대답했다.
"내가 의술을 아는 이로써 이 곳에 선약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노라."
그것들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두 번째 부인을 새로 정하여 지난 밤에 잔치하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소. 그대가 명의라하니 선약으로 왕의 병을 고치면 중상을 받으리라."
길동이 생각하길 '이 놈이 어제 밤에 내 활에 맞은 놈이구나.' 하고 허락하였다. 그것이 길동을 인도하여 문에 세우고 돌아가더니 이윽고 청하기에 길동이 들어가 보니 아름답게 칠해진 커다란 집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흉악한 것이 누워 신음하다가 길동을 보자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내가 우연히 천살을 맞아 위독한데 애들의 말을 듣고 그대를 청하니 이는 하늘이 나를 살린 것이니 재주를 아끼지 말라."
길동이 감사의 뜻을 표하고 말했다.
"먼저 속을 치료할 약을 쓴 후에 겉의 상처를 치료하면 쾌차하올 것입니다."
요괴는 곧이 듣었고 길동이 약주머니에서 독약을 내어 급히 온수에 타서 먹이니 한참만에 한 마디 소리를 지르고 죽어 모든 요괴가 일시에 달려들었다. 길동은 신통술을 부려 모든 요괴를 후려치는데 갑자기 두 젊은 여자가 애걸하였다.
"저희는 요괴가 아니고 인간입니다. 이곳에 잡혀와 지금까지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하늘의 도움으로 장군이 들어와 외괴를 깨끗이 없애니 남은 목숨을 구하여 세상으로 나가게 해 주옵소서."
길동은 백룡의 일을 생각하고 거주지를 물었더니 하나는 백룡의 딸이고 하나는 조철의 딸이었다. 길동이 두 여자를 구철하여 각각 제 부모에게 돌려 보내니 그 부모들은 매우 기뻐하며 그날로 홍생을 사위로 삼았는데 첫째 부인은 백소저요, 둘째 부인은 조소저였다. 길동이 하루 아침에 두 아내를 얻은 후 두 집 가족을 거느리고 제도섬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반기며 치하하였다.
하루는 길동이 천문을 보다가 놀라 눈물을 흘리기에 모든 사람들이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슬퍼하십니까?"
길동은 탄식하며 답하였다.
"내가 부모의 안부를 하늘의 별로 짐작하더니 지금 하늘의 모습은 본즉 부친의 병세가 위중한지라. 내 몸이 멀리 떨어져 있어 거기에 이르지 못할까 하노라."
하니 모든 사람들이 슬퍼하더라. 이튿날 길동이 월봉산에 들어가 무덤으로 사용할 만한 터를 찾고는 석물을 국릉처럼 하였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한 척의 큰 배를 준비하여 조선국 서강 강변으로 대기하라 명하였다. 길동은 바로 삭발하고 중의 모습으로 작은 배를 타고 조선을 향하였다.
이 무렵 홍판서는 갑자기 병을 얻어 위중해지자 부인과 인형을 불러 말하였다.
"내 죽어도 다른 한은 없으되 길동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것이 한이로다. 제가 살아있으면 찾아올 것이니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지 말고 제 어미를 대접하라."
말을 마치고 명을 다하니 온 집안이 슬픔에 잠겼으니 묘터를 구하지 못해 난처해 하였다. 하루는 문지기가 말하길,
"어떤 중이 와서 영위에 조문하려 합니다."
이상히 여겨 들어오라 하니 중이 들어와 목놓아 통곡하니 모든 사람이 곡절을 몰라 서로 쳐다보더라. 그 중이 상주에게 일장 통곡한 후 말하였다.
"형님이 어찌 아우를 몰라 보십니까?"
상주가 자세히 보니 이는 곧 길동이라 붙들고 통곡하며 말하였다.
"어진 아우야, 그 사이 어디 갔더냐? 부친께서 유언이 간절하시매 이제 오니 어찌 자식의 도리를 지키지 않겠는가?"
손을 이끌고 내당에 들어가 모부인을 뵈옵고 춘섬을 상면할 새, 일장 통곡한 후 물었다.
"네 어찌 중이 되어 다니느냐?"
길동이 대답했다.
"소자가 조선을 떠나 삭발하고 중이 되어 지술을 배웠더니 이제 부친을 위해 터를 보았으니 모친은 염려 마십시오.
인형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너의 재주가 기이한지라 좋은 터를 보았다니 무슨 염려가 있으리."
다음날 길동이 운구하여 제 모친을 모시고 서강 강변에 이르니 길동이 지휘한 바 선척이 대기하고 있는지라. 배에 올라 화살같이 저어 한 곳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이 수십 척의 배를 대기하고 있었다. 서로 반기며 호위하여 가니 그 광경이 대단하였다. 어언간 산 위에 다다르니 인형이 자세히 본 즉 산세가 웅장한지라. 길동의 지식을 못내 탄복하더라.
일을 마치매 함께 길동의 처소로 돌아오니 백씨와 조씨가 시어머니와 시숙을 맞아 뵈온 후, 인형과 춘랑은 못내 길동의 지식을 탄복하더라. 여러 날이 되자 인형은 길동과 춘섬을 이별하면서 산소를 극진히 모실 것을 당부한 후 산소에 하직하고 길을 떠났다. 본국에 이르자 모부인을 뵈온 후 전후 사실을 말하니 부인이 신기하게 여기더라.
한편 길동이 제사를 극진히 들어 삼년상을 마치고 모든 영웅을 모아 무예를 익히고 농업에 힘쓰니 병사들은 숙력되고 양식은 풍족했다. 남해에 율도국이 있었으니 비옥한 평야가 수천 리에 이르러 과연 천부지국이었다. 이는 길동이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
길동이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말했다.
"나는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그대들은 정성을 다하라."
그 날로 진군하였다. 길동은 스스로 선봉장으로 나서고 마숙으로 후군장을 삼아 정예 부대 오만을 거느려 율도국 철봉산에 다다라 싸우니 율도국 태수 김현충이 난데없는 군사가 밀물듯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왕에게 보고하는 한 편, 한 부대의 군사를 거느려 내달아 싸우거늘 길동의 단 칼에 김현충을 베어버리고 철봉을 얻어 백성을 달래어 위로하였다. 정철로 철봉을 지키게 하고 대군을 지휘하여 도성을 치는데 격서를 율도국에 보내었다.
"의병장 홍길동은 글을 율도왕에게 부치니 대저 임금은 한 사람의 임금이 아니요, 천하 사람의 임금이라. 내 하늘의 명을 받아 병사를 일으켜 먼저 철봉을 대파하고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으니 왕은 싸우고자 하거든 싸우고 그렇지 않다면 항복하여 살기를 도모하라."
왕이 이를 보고 난 후 소리쳐 말하였다.
"철봉을 굳게 믿었거늘 이제 그를 잃었으니 어찌 대항하랴?"
이리 말하고는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항복했다. 길동은 성안에 들어가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왕위에 오른 후 율도왕으로 의령군을 봉했다. 마숙과 최철을 좌우승상으로 삼고 그 외의 장수들에겐 작위를 수여하니 만세를 불러 하례하였다.
나라를 다스린 지 삼년이 자나니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진 물건도 어느 누구 집어가지 않으니 능히 태평성대라 할 수 있더라.
왕이 백룡을 불러 말했다.
"나가 조선 성상께 표문을 올리려 하니 경은 수고를 아끼지 말라."
백룡이 조선에 당도하여 표문을 올리니 임금은 이를 보고는 칭찬하여 말하였다.
"홍길동은 과연 기이한 인재로다."
왕은 홍인형으로 위로사를 삼아 유서를 내렸다. 인형이 은혜에 감사한 후 돌아와 모부인에게 임금과 이야기한 바를 전하니 부인이 또한 가려 하였다. 인형이 마지 못하여 부인을 모시고 길을 떠나 여러 날만에 율도국에 이르렀다. 왕이 맞아 향안을 배설하고 친서를 받은 후에 모부인과 인형을 반기고 산소를 찾은 후 대연을 베풀었다.
여러 날이 지나 유씨가 홀연 병을 언더 죽으니 선능에 합장하였다. 인형이 왕을 하직하고 본국에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하니 모친상 당한 것을 위로하였다.
율도왕이 삼년상을 마치니 대비가 이어 세상을 떠나 선능에 안장하고 삼년상을 마쳤다. 왕이 삼남 이녀를 낳고 장자와 차자는 백씨 소생이요, 삼자와 차녀는 조씨 소생이라. 장자 현으로 세자를 봉하고 나머지는 다 군으로 봉하였다.
왕이 다스린 지 삼십 년에 홀연 병이 들어 별세하니 그의 나이 칠십 이세라. 왕비도 이어 세상을 떠나니 선능에 안장한 후 세자가 즉위하여 대대로 태평성대를 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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