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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국사 16

[고구려 18대 왕] 고국양왕, 무언가를 하기에는 재위 기간이 짧았다.

[고구려 18대 왕] 고국양왕, 무언가를 하기에는 재위 기간이 짧았다. 고구려의 18대 왕은 고국양왕(384~391)으로 16대 왕인 고국원왕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이련 혹은 어지지입니다. 17대 왕이었던 소수림왕에게는 후사가 없었기에 고국원왕의 둘째 아들인 고국양왕이 왕위에 오린 것입니다. 여전히 백제와의 전쟁은 끝이 없었습니다. 물론 소수림왕이 도입한 불교 정책은 고국양왕 또한 지속하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토지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국사를 세우고 종묘를 수립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국양왕은 왕의 자리에 오른 후 채 10이 지나지 않아 서거하였기에 그에 관한 기록은 별로 없었습니다. 고국양왕에 관한 기록은 삼국 사기에 후연을 공격하여 요동과 현도를 점령하였으나 다시 빼..

교육/국사 2017.01.08

[고구려 17대 왕] 소수림왕, 고구려의 체제(태학, 불교)를 정비하다.

[고구려 17대 왕] 소수림왕, 고구려의 시스템(태학, 불교)을 정비하다. 비운의 왕이었던 고국원왕은 백제의 근초고왕과의 평양성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완전히 함락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소수림왕(371~384)은 고국원왕을 이어 즉위합니다. 짧은 재위기간임에도 소수림왕은 고구려의 체제를 정비합니다. 그는 재위 2년(372년)에 전진에서 보낸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들입니다. 최초의 한국의 사찰인 이불란사는 불교를 도입한 것은 불교를 도입한 지 2년 (374년) 후의 일입니다. 375년에는 초문사를 창건하고 승려 순도를 고구려에 머물게 합니다. 이를 통해 전진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민간에 불교 보급 정책을 통해 불교를 호국사상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유학 교육기관으로 태학을 ..

교육/국사 2017.01.08

[고구려 16대 왕] 고국원왕은 비운의 왕?

[고구려 16대 왕] 고국원왕은 비운의 왕? 고구려 16대 왕인 고국원왕(331~371)은 비운의 왕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그럼에도 40여년이라는 비교적 긴 재위 기간동안 통치를 하였고 이는 17대 왕인 소수림왕에서 꽃을 피웁니다. 당시 혼란한 정세 때문에 그를 비운의 왕이라 부르지만 어찌보면 그럭저럭 잘 버텼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고국원왕은 314년에 왕태자에 책봉되었고 미천왕이 죽은 331년 2월(음력)에 즉위합니다. 그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성을 쌓거나 증축하여 변경의 수비를 강화하였습니다. 334년에는 평양성을 증축, 335년에는 신성을 쌓고 342년에는 환도성과 국내성을 증축하였습니다. 이러한 변경 수비를 강화한 것은 모용외(5호 16국 시대 선비족의 수장)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육/국사 2017.01.02

[고구려 14대, 15대 왕] 교만하고 포악 무도한 봉상왕과 도망자의 삶을 살았던 미천왕

교만하고 포악 무도한 봉상왕과 도망자의 삶을 살았던 미천왕 고구려 14대 왕은 봉상왕(292~300)입니다. 아버지였던 서천왕이 어질고 총명하였지만 봉상왕은 교만하고 포악 무도한 왕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봉상왕은 왕위에 오르자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주력, 숙신을 격파하고 숙부 달가를 죽입니다. 그리고 즉위한 지 1년 뒤인 293년에는 동생 돌고를 죽이고 돌고의 아들 을불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을불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나와 숨어지냈습니다. 어느 날 을불은 허름한 차림으로 주막에 들러 막걸리를 시킨 후에 마을의 부잣집을 묻습니다. 그리고는 주모가 알려준 부잣집에 가서 머슴을 자처합니다. 한 해가 지난 어느 날, 주인이 마당 연못에 개구리 울음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겠다고 을불에게..

교육/국사 2016.12.28

[고구려 13대 왕] 어질고 총명한 서천왕

[고구려 13대 왕] 어질고 총명한 서천왕 고구려 13대 왕은 서천왕(270~292)입니다. 즉위한 다음해(271년)에 서부 대사자 우수의 딸을 왕후로 삼았고 그 해 7월에 국상 음우가 죽었고 9월에 상루를 국상으로 삼았는데 그는 음우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부 대사자에 관한 기록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성품이 어질고 총명하여 많은 백성의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280년(서천왕 11년) 10월에 숙신이 고구려 변경에 침입하여 많은 백성을 잃습니다. 이에 서천왕은 신하들에게 사령관을 추천하라고 지시합니다. 신하들은 용병에 능한 왕제 달가를 추천하였습니다. 달가는 급습 전략으로 단로성을 빼앗고 숙신의 추장을 잡아 죽입니다. 그리고 적의 부락 7곳을 항복받아 속국으로 삼습니다. 이에 서천왕은 달..

교육/국사 2016.12.28

[고구려 12대 왕] 중천왕, 사랑스런 관나부인을 바다에 버리다.

중천왕, 사랑스런 관나부인을 바다에 버리다. 중천왕(248~270)은 고구려 12대 왕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중천왕 4년에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지에 넣어 서해 바다에 던져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왕비의 질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당시 적국이였던 위나라에서 머리 긴 여자를 구한다고 왕에게 얘기를 하는데 이를 들은 중천왕은 움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얼굴이 빼어나고 중천왕의 사랑을 받는 관나부인의 긴 머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관나부인도 이 얘기를 듣고 왕비가 자신을 헐뜯기 위해 만들어낸 얘기라고 중천왕에게 말합니다. 중천왕은 두 여인의 싸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관나부인은 왕비가 자신을 죽여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버리려 한다고 중천왕에게 말합니다...

교육/국사 2016.12.16

[고구려 11대 왕] 지나친 자만으로 충신(득래, 밀우, 유유)들을 잃은 동천왕

지나친 자만으로 충신(득래, 밀우, 유유)들을 잃은 동천왕 고구려의 11대 왕은 동천왕(227~248)입니다. 형사취수(형을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한 산상왕은 왕후 우씨와 자식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에 주통촌 출신의 용녀로부터 얻은 자식이 동천왕입니다. 동천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오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였고 충신들과 평안한 나라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234년에 위와 화친하면서부터 정세는 180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238년 위가 요동의 공손연을 토벌할 때 군사 천여명을 보내 위를 도았지만 이는 두 나라의 국경이 맞닿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30대의 젊은 기상으로 위나라와 싸워 서안평을 함락하였고 이 기세를 몰아 계속 전쟁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장이었던 득래는 ..

교육/국사 2016.11.28

[고구려 9대, 10대 왕] 두 번의 국모 우씨, 남편 고국천왕을 죽이고 산상왕과 재혼하다.

두 번의 국모 우씨, 남편 고국천왕을 죽이고 산상왕과 재혼하다. 고구려의 9대 왕은 고국천왕(179~197)이며 10대 왕은 산상왕(197~227)입니다. 그런데 고국천왕과 산상왕은 부인이 같습니다. 바로 두 번 국모를 한 우씨입니다. 고국천왕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곡식을 빌려 주었다가 가을 추수가 끝난 후에 되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한 왕입니다. 진대법은 농민 출신 재상인 을파소가 의견을 낸 것을 다른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국천왕이 힘을 실어 진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국청왕은 그의 아내 왕후 우씨에 의해 비명횡사합니다. 왕후 우씨는 귀족들이 권력에서 멀어지고 을파소 등의 재야출신이 힘을 얻는 것을 시기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 197년 5월 봄에 비명횡사한 고국천왕의 죽음은 후계자였..

교육/국사 2016.11.28

[고구려 8대 왕] 역사는 승자의 기록? 신대왕

역사는 승자의 기록? 신대왕 고구려의 8대 왕은 신대왕입니다. 신대왕의 이름은 백고 혹은 백구라고 알려졌으며 태조왕의 동생이나 아들 혹은 차대왕의 아들이라고 역사서에 따라 다르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고구려의 6대 왕인 태조왕과 차대왕이 같은 해에 죽었다는 것이죠. 특히 7대 차대왕은 하급관리였던 명림답부에 의해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림답부는 신대왕에 의해 최고위직이었던 국상(이전에 좌보와 우보를 단일화한 것으로 신대왕이 만든 직위)으로 임명합니다. 역사서에서는 차대왕을 성질이 포악하고 욕심이 많은 왕으로 표현하고 있고 신대왕은 인자하고 영특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조왕과 차대왕이 같은 해에 죽은 것이나 차대왕을 시해한 하위관리 명림답부를 최고위직 국상으로 임..

교육/국사 2016.04.15

[고구려 6대, 7대 왕] 태조왕과 차대왕

태조왕과 차대왕 고구려의 6대왕은 태조왕으로 53년~146년까지 왕위를 지켜 한국 역사에서 가장 장기 집권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기 집권을 통해 요서 지역에 10개의 성을 쌓고 주변 속국들에 정벌 활동을 통해 중앙 집권화를 진행한 업적을 남겼죠. 하지만 132년 무렵부터 왕위에 욕심을 낸 동생 수성의 영향을 받았으며 결국 146년에 왕위를 넘겨줍니다. 왕위를 물려 받은 수성은 고구려의 7대왕 차대왕으로 욕심이 많고 성질이 사나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칩거에 들어간 태조왕이 죽었을 때 빈소에 들리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조왕이 죽은 146년 그는 하위관리에 의해 시해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에서의 기록과 중국의 후한서의 기록에는 상당한 차..

교육/국사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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