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성공을 요구하지 말고 행복한 삶을 지지하자.
안녕하세요. 언제나 휴일, 언휴예요.
우리는 여러 곳에서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 "성공한 이들의 생활" 처럼 <성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특히 자기 자식에게는 <성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 바라는 정도가 지나쳐서 <성공>을 위한 생활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많은 판단을 대신해 주고 있죠.
그런데 왜 우리는 <성공>을 이상향처럼 바라보는 것일까요? 아마도 <성공>하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행복>이란 것이예요.
그렇다면 자식에게 <성공>을 요구하는 우리는 진정 자식들이 <행복>한 삶으로 걷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까요?
<성공>이라는 단어 속에는 경쟁이라는 살벌한 단어가 숨어있습니다.
이미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앞서 나갈 수 있게 사전 교육은 필수로 만든 지 오랩니다. 초등학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 교육에 제대로 뛰어 놀지도 못하고 있죠. 실제 같이 뛰어 놀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어서 놀기 위한 학원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말 할 것도 없어요.
이들이 대학생이 된다고 경쟁이 줄어들지 않아요. 예전에는 대학에서의 낭만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취업을 찾는 이들로 가득차죠. 직장 생활에서도 예전처럼 정년 퇴직까지 자신의 회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을 위하여, 더 나은 회사로 가기 위하여, 명퇴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 경쟁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공은 언제 하고 성공하면 행복해 지긴 하는 건가요? <성공>이라는 단어는 항구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특목고, 서울대, 대기업을 타겟으로 잡는다고 가정을 할게요. 자신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감정 이입해 보세요. 어릴 때부터 특목고를 가기 위해 학원과 과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겠죠. 호감있는 이성에 관한 고민은 나의 성공을 방해하는 사치적인 감정일 뿐이예요. 따돌림을 당하는 같은 반 학우의 쓸쓸한 눈빛은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 대상이 줄어든 것일 뿐이죠. 경제적으로 여력이 가능한 부모 밑에서 부모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인간이 가져야 할 다양한 감정과 이러한 감정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체험해야 할 성장기에 특목고를 위한 타이트한 생활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특목고에 합격하면 행복하긴 한 것일까요? 부모는 분명히 행복할 거 같군요. 그런데 특목고에 합격한 당신의 자녀는 행복할까요? 아니 행복이란 감정을 알까요? 이미 부모에 의해 특목고에 합격하면 성공한 것이고 성공한 것은 바로 행복을 보장한다는 세뇌 속에서 "나는 특목고에 합격했으니 성공했어. 성공했으니 당연히 행복해."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암튼 잠시 특목고에 합격하였고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행복에 취하면 다음 목표인 서울대에 합격하기는 힘들겠죠. 다시 성공을 위해 달려야 합니다. 이제 3년의 타이트한 생활을 통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 꾹 참고 공부해야겠죠. 물론 여기에서의 공부는 나의 적성에 맞는 공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획일적인 공부지만 이미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생활에서 적응해 있어서 문제없어요. 이미 이러한 삶에 익숙해진 것이죠. 교우들과의 다양한 삶과 대화 속에서 풍성한 감성과 균형잡힌 이성을 경험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미션이죠. 이미 익숙해진 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해 달려갈 뿐이예요. 수업이 끝나고 학교 밖에서는 선생님을 욕하면서도 학교 안에서는 딸랑거리는 것은 이미 익숙한 삶이죠.
그리고 서울대에 학격하면 행복하긴 한 걸까요? 부모는 행복할 거 같군요. 그리고 대학 생활도 대기업을 합격하기 위해 경쟁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며 대기업에 합격하더라도 다시 경쟁 속에 살아야 할 거예요.
도대체 무엇이 <행복>한 것이며 언제 행복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예요. 다만 그 속에서 다른 의견을 내거나 다른 삶을 살 용기가 부족할 뿐인 것이죠.
두려워하지 마시고 심플해 지세요. 우리의 궁극은 <행복>이 잖아요. 자식이 아직 어려서 올바르지 못한 판단을 할 까 두려워서 자신이 판단을 하지 마세요. 올바르지 않은 판단을 했을 때 왜 그것이 옳지 않은 판단인지 알려주세요. 자식의 삶에서 많은 판단을 자식 스스로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시고 여러분은 자식의 거울 역할에 충실하세요. 옳지 않은 판단을 할 때 왜 그것이 옳지 않은 판단인지 알 수 있게 거울 역할만 해 주세요.
성공한 삶을 요구하지 마시고 행복한 삶을 지지하세요. 그리고 나와 나의 자식들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할 지 고민하고 실천해 보아요. 이미 우리는 촛불을 경험해 보았잖아요.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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