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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계몽 운동의 산물, 심훈 작가의 "상록수"

언제나휴일 2016. 5. 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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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계몽 운동의 산물, 심훈 작가의 "상록수"


간행

동아일보 1935년 9월 10일~1936년 2월 15일 동안 127회, 1936년 한성도서

작가

심훈(1901년~1936년), 본명은 심대섭

대표작

'그 날이 오면', '영원의 미소', '찬미가에 싸인 원혼', '기남의 모험', '황공의 최후' 등

시대적 배경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

작품의 의의

우리 민족의 정신을 살리고 독립의 밑거름을 만들기 위해 농촌 계몽




상록수

심훈

 한편으로 글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은 거진 날마다 늘었다. 양철 지붕에 송판[각주:1]으로 엉성하게 지은 조그만 예배당은 수리를 못 해서 벽이 떨어지고 비만 오면 천장이 새는데, 선머슴 아이들이 뛰고 구르고 하여서 마루청까지 서너 군데나 빠졌다. 그것을 볼 때마다 늙은 장로는,

 "흥, 경비는 날 곳이 없는데 너희들이 예배당을 아주 헐어 내는구나. 강습이구 뭐구 인젠 넌덜머리[각주:2]가 난다."

하고 허옇게 센 머리를 내둘렀다. 더구나 새로 글을 깨친 아이들도 어느 틈에 분필과 연필로 예배당 안팎에다가 괴발개발[각주:3] 글씨도 쓰고 지저분하게 환[각주:4]도 친다. '신퉁이 개자식이라', '갓난이는 오줌을 쌌다더라'하고 제 동무의 욕을 쓰기도 하고, 심지어 십자가를 새긴 강당 정면에다가 나쁜 그림까지 몰래 그려 놓기도 하여서 그런 낙서를 볼 때마다 장로와 전도사는 상을 찌푸린다.


 영신은 여간 미안하지가 않아서 하루도 몇 번씩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타일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가 진땀을 흘리며 가르친 아이들이 하나둘씩 글눈을 떠 가는 것이 여간 대견하지 않았다. 비록 나쁜 그림을 그리고 욕을 쓸 망정 그것이 여간 신통하지가 않아서,

 "장로님, 저희두 따루 집을 짓구 나갈 테니, 올가을꺼정만 참어줍시오."

하고 몇 번이나 용서를 빌었다. 그러면 변덕스러운 장로는 대머리를 어루만지며,

 "원, 채 선생, 별말씀을 다 허는구려. 다 하나님의 뜻대루 되겠지요. 그게 좀 거룩헌 사업이오."

하고 얼더듬는다. 그럴수록 영신은 사글셋집에 들어 있는 것만치나 불안스러워서 하루바삐 집을 짓고 나가려고 아니 해 보는 궁리가 없었다.


 그러나 원체 가난한 동리[각주:5]인 데다가, 그나마 돈이 한창 마른 때라 기부금은 적어 놓은 액수의 십분의 일도 걷히지를 않고 친목계원들이 춘잠[각주:6]을 쳐서 한장치[각주:7]에 열서너 말씩이나 땄건만, 고치금[각주:8]이 사뭇 떨어져서 예산한 금액까지 되려면 어림도 없다. 닭도 집집마다 개량식으로 쳤지만 모이를 사서 먹인 것과 레그혼 같은 서양 종자의 어미 닭값을 따지고 보면 계란값과 비겨 떨어진다.

 그러니 줄잡아도 오륙백 원이나 들여야 할 학원을 지을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영신이가 하도 집을 짓지 못해서 성화를 하니까 다른 회원들은,

 "급히 먹는 밥이 체헌다우. 우리 선생님두 성미가 급허셔."

 하고 위로하듯 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이 한꺼번에 대여섯 명, 어떤 때는 여남은 명씩 부쩍부쩍 는다. 보통학교[각주:9]가 사오 리 밖이나 되는 곳에 있고 간이 학교라고 새로 생긴 것도 장터까지 가서야 있으니,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은 등잔불로 날아드는 나비처럼 청석골로만 모여들 수밖에 없는 형세다. 요새 들어온 아이들까지 합하면, 거진 일백삼십여 명이나 된다.


 그러나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한 아이도 더 수용할 수 없다고 오는 아이를 쫓을 수는 없다. 영신은,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하는 찬송가 구절을 입속으로 부르며,

 '오냐, 예배당이 터지도록 모여 오너라, 여름만 되면 나무 그늘도 좋고, 달밤이면 등불두 일없다.' 

 하고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그곳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람들의 응원을 얻어 남자와 여자, 초급과 상급으로 반을 나누어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신을 숭배하고 일을 도와주는 순진한 청년이 서너 명이나 되지만 그중에도 주인집의 외아들인 원재는 영신의 말이라면 절대로 복종을 하는 심복[각주:10]이었다. 같은 집에 살기도 하지만 상급 학교에는 가지 못하는 처지라, 새새틈틈이 영신에게서 중등 학과를 배우는 진실한 청년이다.


 가뜩이나 후락[각주:11]한 예배당 안은 콩나물을 기르는 것처럼 아이들로 빡빡하다. 선생이 부비고 드나들 틈이 없을 만치 꼭꼭 찼다. 아랫반에서,

 "'가'자에 ㄱ허면 '각'허구."

 "'나'자에 ㄴ허면 '난'허구."

 하면서 다리도 못 뻗고 들어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반짝 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 주둥이 같은 입을 일제히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그러면 윗반에서는 "농민독본[각주:12]"을 펴 놓고,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먼 자 눈을 떠라.

 부지런히 일을 하야

 살 길을 닦아 보세.


 하며 목청이 찢어져라고 선생의 입내[각주:13]를 낸다. 그 소리를 가까이 들으면 귀가 따갑도록 시끄럽지만, 멀리 축동 밖에서 들을 때,

 '아아, 너희들이 인제야 눈을 떠 가는구나!'

 하며 영신은 어깨춤이 저절로 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저녁때였다. 영신의 신변을 노상 주목하고 다니던 순사[각주:14]가 나와서 다짜고짜,

 "주임이 당신을 보자는데, 내일 아침까지 주재소[각주:15]로 출두를 허시오."

 하고 한마디를 이르고는 말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자전거를 되짚어 타고 가 버렸다.

 '무슨 일로 호출을 할까?'

 '강습소 기부금은 오백 원까지 모집을 해도 좋다고 허가를 해 주지 않었는가?'

 영신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웬만한 일 같으면 출장 나온 순사에게 통지만 해도 고만일 텐데, 일부러 몇십 리 밖에서 호출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 붙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신이가 처음 내려오던 해부터 이 일 저 일에 줄곧 간섭을 받아 왔었지만, 강습소 일이나 부인 친목계며 그 밖에 하는 일을 잘 양해를 시켜 오던 터이라 더욱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ㅅ었다.

 별별 생각이 다 나서 영신은 그날 밤 잘 자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밥을 지어 달래서 먹고는 길을 떠났다. 이십 리는 평탄한 신작로[각주:16]지만 나머지는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고 발이 부르트고 속옷은 땀에 젖었다.


 영신과 주재소 주임 사이에 주고받은 대화나 그 밖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출한 요령만 따서 말하면,

 '첫째는 예배당이 좁고 후락해서 위험하니 아동을 팔십 명 이외에는 한 사람도 더 받지 말라는 것과, 둘째는 기부금을 내라고 돌아다니며 너무 강제 비슷이 청하면 법률에 저촉이 된다.'는 것을 단단히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영신은 여러 가지로 변명도 하고 오는 아이들을 아니 받을 수는 없다고 사정사정하였으나,

 "상부의 명령이니까 말을 듣지 아니하면 강습소를 폐쇄시키겠다."

 라고 을러메어서[각주:17] 영신은 하는 수 없이 입술을 깨물고 주재소 문밖을 나왔다.


 그는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돌아와서 저녁도 아니 먹고 그날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하였다.

 '참자! 이버덤 더한 것도 참어 왔는데, 이만헌 일이야 참지 못하랴.'

 하면서도 좀 더 시원하게 들이대지를 못하고 온 것이 종시[각주:18] 분하였다. 그러나 혈기를 참지 못하고 떠들었다가는 제한받은 수효의 아이들마저 가르치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꿀꺽 참았던 것이다. 아무튼, 어길 수 없는 명령이매, 내일부터 일백사십여 명 중에서 팔십 명만 남기고 오십여 명을 쫓아내야 한다. 저의 손으로 쫓아내야만 한다.

 "난 못 하겠다! 차라리 예배당 문에 못질을 하는 한이 있드래도 내 손으로 차마 그 노릇은 못 하겠다!"

 하고 영신은 부르짖으며 방바닥에 가 쓰러져 버렸다. 한참 동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며 홀로 고민을 하였다.


 그는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러나 이제까지 갖은 고생과 온갖 곤욕을 당해 가면서 공들여 쌓은 탑[각주:19]을, 그 밑동부터 제 손으로 허물어뜨릴 수는 없다. 청석골 와서 몇 가지 시작한 사업 중에 가장 의미 깊고 성적이 좋은 한글 강습을 중도에서 손을 뗄 수는 도저히 없다.

 '어떡허면 나머지 오십 명을 돌려보낼꼬?'

 '이제까지 두말없이 가르쳐 오다가 별안간 무슨 핑계로 가르칠 수가 없다고 한단 말인가?'

 거짓말을 하기는 죽어라고 싫건만 무어라도 꾸며 대지 않을 수도 없는 사세[각주:20]다. 아무리 곰곰 생각해 보아도 묘책이 나서지를 않아서 그는 하룻밤을 하얗게 밝혔다.

 창밖에 새벽별이 차차 빛을 잃어 갈 때, 영신은 소세[각주:21]를 하고 나와서 예배당으로 올라갔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아직도 단꿈에서 깨지 않아 천지는 함께 괴괴하다.[각주:22]

 영신은 이슬이 축축이 내린 예배당 층계에 엎드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주여, 당신의 뜻으로 이곳에 모여든 귀엽고 사랑스러운 어린 양들이 오늘은 그 삼분의 일이나 목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어둠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이 되었습니다!

 주여, 그 가엾은 무리가 낙심하지 말게 하여 주시고 하나도 버리지 마시고 다시금 새로운 광명을 받을 기회를 내려 주시옵소서! 

 오오 주여,, 저의 가슴은 지금 미어질 듯합니다.'

 영신은 햇발이 등 뒤를 비추며 떠오를 때까지 그대로 엎드린 채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월사금 육십 전을 못 내고 몇 달씩 밀려 오다가 보통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그날도 두 명이나 식전에 책보를 들고 그 학교의 모자표를 붙인 채 왔다.

 "얘들아, 참 정말 안됐지만 인전 앉을 데가 없어서 받을 수가 없으니 가을버텀 오너라. 얼마 있으면 새 집을 커다랗게 지을 텐데 그때 꼭 불러 주마, 응."

 하고 영신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적거는 등을 어루만져 주며 간신히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다른 아이들이 오기 전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잠 한숨 자지를 못해서 머리가 무겁고 눈이 빡빡한데, 교실 한복판에 가서 한참 동안이나 실실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섰자니, 어찔어찔하고 현기증이 나서 이마를 짚고 있다가 다리를 간신히 떼어 놓으며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분필을 집어 가지고 교단 앞에서 삼분의 일가량 되는 데까지 와서는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 창 밑까지 한일자로 금을 죽 그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예배당 문을 반쪽만 열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재깔거리며 앞을 다투어 우르르 몰려들어 온다.

 영신은 잠자코 맨 먼저 온 아이부터 하나씩 둘씩 차례차례로, 분필로 그어 놓은 금 안으로 앉혔다. 어느덧 금 안에는 제한을 받은 팔십 명이 찼다.

 "나중에 온 아이들은 이 금 밖으로 나가 앉어요. 떠들지들 말구."

 선생의 명령에 늦게 온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오늘은 왜 이럴까?'

 하는 표정으로 선생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금 밖에 가서 쪼그리고 앉는다.

 아이들에게 제비를 뽑힐 수도 없고 하급생이라고 마구 몰아내는 것도 공평치가 못할 듯해서, 영신은 생각다 못해 나중에 오는 아이들을 돌려보내려는 것이다. 나중에 왔다고 해도 시간으로 보면 불과 십 분 내외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렇게 하는 도리 이외에 아무 상책이 없었던 것이다.


 영신은 아이들을 다 들여앉힌 뒤에 원재와 다른 청년들에게 그제야 그 사정을 귀뜸해 주었다. 그런 소문이 미리 나면 일이 더 복잡해 질 것을 염려하여였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청년들의 얼굴빛은 금세 흙빛으로 변하였다.

 "암말두 말구 나 허라는 대루만 장내를 잘 정돈해 줘요. 자세헌 얘긴 이따가 헐게…… ."

 청년들은 영신을 절대로 신임하는 터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침통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영신은 찬찬히 교단 위에 올라섰다. 그 얼굴빛은 현기증이 나서 금방 쓰러지려는 사람처럼 해쓱해졌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허시려구 저러나.'

 하고 저희들 깐에도 보통 때와는 그 기색이 다른 것을 살피고는 기침 하나 아니하고 영신을 쳐다본다.

 영신은 입술만 떨며 얼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섰다. 사제 간의 정을 한칼로 베어 내는 것 같은 마룻바닥에 그어 놓은 금을 내려다보고, 그 금 밖에 오십여 명 아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무슨 무서운 선고나 내리기를 기다리는 듯한 그 천진한 얼굴들을 바라볼 때, 영신은 눈두덩이 뜨끈해지며 목이 막혀서 말을 꺼낼 수가 없다. 한참 만에야 그는 용기를 내었다. 그러다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러 학생들, 조용히 들어요. 오늘은 선생님이 차마 허기 어려운 섭섭헌 말을 헐 텐데…… ."

 하고 나서 다시 주저하다가,

 "저…… 금 밖에 앉은 아이들은 오늘버텀 공부를…… 시킬 수가…… 없게 됐어요."

 하였다. 청천의 벽력[각주:23]은 무심한 어린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깜박깜박하고 선생을 쳐다보던 수없는 눈들은 모두가 꽈리처럼 똥그래졌다.

 "왜요? 선생님, 왜 글을 안 가르쳐 주신대유?"

 그 중에 머리가 좀 굵은  아이가 발딱 일어나며 질문을 한다.


 영신은 순순히 타이르듯이, '집이 좁아서 팔십 명밖에는 더 가르칠 수가 없게 되었다.'며, '올가을에 새 집을 지으면, 꼭 잊어버리지 않고 한 사람도 빼어 놓지 않고 불러 주마.'고 빌다시피 하였다.

 "그럼 입때꺼정은 이 좁은 데서 어떻게 가르쳐 주셨에유?"

 이번엔 제법 목소리가 패인 남학생의 질문이 들어왔다. 영신은 화살이나 맞은 듯이 가슴 한복판이 뜨끔하였다. 그 말대답을 못 하고 머리가 핑 내둘려서 이마를 짚고 섰는데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은 하나둘 앉은 채 엉금엉금 기어서, 혹은 살금살금 뭉치면서 금 안으로 밀려들어 오다가,

 "선생님! 선생님!"

 하고 연거푸 부르더니 와르르 교단까지 뛰어오른다.

 영신은 오십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에워싸였다.

 "선생님!"

 "선생님!"

 "전 벌써 왔에요."

 "뒷간에 갔다가 쪼금 늦게 왔는데요."

 "선생님, 난 막동이버덤두 먼첨 온 걸 저 차순이두 봤에요."

 "선생님, 낼버텀 일찍 오께요. 선생님버덤두 일찍 오께요."

 "선생님, 저 좀 보세요. 절 좀 보세요! 인전 아침두 안 먹구 오께 가라구 그러지 마세요, 네 네."

 아아들은 엎드러지며 고꾸라지며 앞을 다투어 교단 위로 올라와서, 등을 밀려 넘어지는 아이에, 발등을 밟히고 우는 아이에, 가뜩이나 머리가 띵한 영신은 정신이 아찔아찔해서 강도상[각주:24]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서 있다. 제 몸뚱이로 버티고 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포위를 당해서 쓰러지려는 몸이 억지로 떠받들려 있는 것이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들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은 귀가 따갑도록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영신은 눈을 내리감고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 뿐…… .


 "내려들 가!"

 "어서 내려들 가거라!"

 "말 안 들으면 모두 내쫓을 테다."

 하면서 영신을 도와주는 청년들이 아이들을 끌어내리고 교편을 들고 을러메건만, 그래도 아이들은 울며불며 영신은 몸에 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죽기 기쓰고 떨어지지를 않는다.

 영신의 저그리는 수세미가 되고 치맛주름까지 주루루 뜯어졌다. 어떤 계집애는 다리에다가 깍지를 끼고 엎드려서 꼼짝을 못 하게 한다.

 영신은 뜯어진 치마폭을 휩싸 쥐고 그제야,

 "놔라, 놔! 얘들아, 저리들 좀 가 있어. 온 숨이 막혀서 죽겠구나!"

 하고 몸을 뒤틀며 손과 팔에 매달린 아이들을 가만히 뿌리쳤다. 아이들은 한번 떨어졌다가도 혹시나 제가 빠질까 하고 다시 극성스레 달라붙는다.


 이 광경을 본 교회의 직원들이 들어와서 강제로 금 밖에 앉았던 아이들을 예배당 밖으로 내몰았다. 

 사내아아, 계집아이 할 것 없이 어머니의 젖을 억지로 떨어진 것처럼 눈이 빨개지도록 홀짝홀짝 울면서 또는 흑흑 흐느끼면서 쫓겨 나갔다.

 장로는 대머리를 번득이며 쫓아 나가서, 예배당 바깥 문을 걸고 빗장까지 질렀다. 아이들이 소동을 해서 시끄러워 골치도 아프거니와, 경찰의 명령을 듣지 않다가는 교회의 책임자인 자기의 발등에 불똥이 튈까 보아 적지 않이 겁이 났던 것이다.


 아이들의 등 뒤에서 이 정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깨물었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영신은 그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돌아섰다. 한참이나 진정을 하고 나서는 저희들 깐에도 동무들을 내쫓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미안쩍은 듯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은 나머지 여든 명을 정돈시켜 놓고 차마 내키지 않는 걸음걸이로 칠판 앞으로 갔다.

 그는 새로운 과정을 가르칠 경황이 없어서,

 "오늘은 우리 복습이나 허지."

 하고 교과서로 쓰는 "농민독본"을 펴 들었다. 아이들은 독본에 있는 대로,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하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외기를 시작한다.


 영신은 그 생기 없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기 싫은데,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이가 빠진 듯이 띄엄띄엄 벌려 앉은 교실 한 귀퉁이가 빈 것을 보지 않으려고 유리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내다보던 영신은 다시금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예배당을 에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 나간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조옥 매달려서 담 안을 넘겨다보고 있지 않은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열매다. 그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를 못하고 땅바닥에 가 주저앉아서 홀짝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그든지 학교로 오너라."

 "애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알아보아요.

주인공 채영신은 실존 인물 '최용신'을 모델로 했어요. 최용신기념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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