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
고공답주인가
이원익
아아! 저 양반아! 돌아앉아 내 말 듣소?
어떠한 젊은 손이 셈없이 다니는가?
주인님 말씀을 아니 들어 보았는가?
공 바치고 돌아갈 때, 하는 일 다 보았네.
우리 댁 세간이야 예부터 이렇던가?
전민(田民) 2이 많다는 말이 일국(一國) 3에 소리나네.
무슨 일 하느라 터밭을 묵였는가?
농장(農場) 5이 없다 하던가? 호미 연상 못 가졌던가?
날마다 무엇하려 밥먹고 다니면서
아이들 탓이던가? 우리 댁 종의 버릇 보노라면 이상한데.
한 집의 많은 일을 누가 힘써 할까?
곡식창고(穀食庫,곡식고) 10 비었거든 고직(庫直) 11인들 어이 하며
세간이 흩어지니 옹기인들 어이 할까?
내 왼 줄 내 몰라도 남 왼 줄 모르던가?
풀치거니 맺히거니 헐뜯거거니 돕거니
하루 열 두 때 어수선 핀 것인가?
밖별감 많이 있어야 외방사음(外方舍音) 도달화(都達花) 12도
비 새어 썩은 집을 누가 고쳐 이으며
옷 벗어 무너진 담 누가 고쳐 쌓을까?
불한당 구멍 도적 아니 멀리 다니거든
크나큰 기운 집에 상전님 혼자 앉아
낮시름 밤근심 혼자 맡아 계시거니
옥같은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일까?
이 집 이리 되기 뉘 탓이라 할 것인가?
셈없는 종의 일은 묻지도 아니 하려니와
도리어 생각하니 상전의 탓이로다.
내 생전 외다 하기 종이 죄 많컨마는
그렇다 세상 보며 민망하여 여쭙니다.
삭꼬기 말으시고 내 말씀 들으소서.
집일을 고치거든 종들을 휘어잡고
종들을 휘어거든 상벌(賞罰)을 밝히시고
상벌을 밝히거든 어른 종을 믿으소서.
작가: 이원익(1547년 ~ 1634년)
조선중후기 학자이자 정치인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여 호성공신에 녹훈
주제: 임진왜란 직후 게으르고 부패한 관리들을 비판(고공가의 답가)
표현: 집안일을 빗대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얘기하고 있음. 주인과 종의 관계를 빗대어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음
성격: 풍유적, 교훈적, 계도적
출전: 순조 때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잡가라는 노래책
관련글: 허전의 고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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